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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잠

다L- 나태

 

눈도 오지 않는 양곤에서

나는 나를 무한히 사랑해야 한다

양곤 엘레지, 전성호

 

*

 

알뿌리를 잘린 튤립들이 수분을 머금은 도톰한 모양으로 흰 통에 꽂혀있다. 붉은색, 노란색 꽃잎들이 단단하게 보인다. 그 옆에 파란 수국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꽃송이처럼 모여 있었고 작은 포트에 담긴 다육식물들은 창가에 쭉 늘어서 있었다. 끝이 붉은 홍옥은 길쭉한 유리알처럼 반짝거리고 넓적하고 굵은 가시가 난 손바닥 선인장은 분홍색 꽃이 폈다.

길을 향한 쪽 벽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아침 햇빛이 낮은 각도로 들어오고 있었다. 희게 빛나는 갖은 색의 빛이 공중이 먼지를 비춘다. 곧게 뻗은 작은 나무와 천장에 걸려있는 아이비의 넝쿨이 빛을 받아 바닥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먼지는 소리도 없이 한 박자씩 느리게 공중을 떠돈다. 아주 아주 느리게.

차르랑. 문이 열려 들어온 바람에 테이블 야자 잎이 흔들거린 흔들거린다. 다자이는 이상한 콧노래를 부르며 화분에 물을 흠뻑 줬다. 이파리와 꽃에 물다. 풍경 소리가 차랑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점점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처럼 옅은 갈색 자기 조각이 유약 자국을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마디가 길쭉하고 얇은 손이 유리문을 활짝 열고 돌로 닫치지 않게 받친다. 손목 바깥으로 볼록 튀어나온 뼈가 섬세하고 약해 보인다. 그 사이로 희미한 흉터들이 알른알른 있다. 가늘고 흰 실 같은 자국이 손등을 조금 덮도록 올라온 붕대 밖으로 나와 있다.

안쪽 문에 걸려있는 수염 틸란드시아가 청록색 비늘 같은 색을 띄고 후드득후드득 떨어진다. 비를 맞은 것처럼 어린 초록색 줄기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온 표면에 물방울이 자잘하게 달라붙어 반짝거리고 뾰족한 잎끝에 매달린 물은 제각기 다른 시간을 가지고 떨어진다. 물방울과 얕게 고인 물이 맞닿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한참 동안 흥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천천히 줄어들다 그쳤다.

다자이는 물을 뿌렸던 호스를 둘둘 감아 벽에 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박거린다. 바닥에 고인 물을 밀걸레로 밀어내고 손을 씻는다. 바닥에 자국을 남긴 물기가 희미하게 백합을 비췄다.

 

*

 

마음을 꾹 누르는 듯한 아픔이 날숨에 섞인다.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슬픔에 입안이 메이고 부드러운 안쪽 입천장이 혀와 함께 마른다. 침을 삼키려 하지만 입천장이 한없이 깊숙한 것처럼 느껴진다. 왼쪽 어깨를 오른손으로 꾹 누르고 몸을 웅크린다. 무릎에 머리를 묻고 눈을 감고,

그가 죽었던 그때.

 

*

 

카펫은 털이 한쪽 결로 촘촘히 나 있어 반대로 쓸면 색이 진해졌었다. 사각형 모양의 연보라색 카펫은 무늬 없이 거실 창 앞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다. 털의 뿌리 쪽은 단단하게 얽혀있지만 표면은 부드러워 나는 자주 카펫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하곤 했었다. 배를 대고 엎드려 발끝으로 푹신한 카펫 위를 톡톡 칠 때의 느낌을 좋아했다. 커다란 유리창 양쪽의 커튼에서는 옅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었다. 가끔 그게 거슬려 새 커튼을 사자고 했지만 그는 안된다며 단호하게 말했다. 왜 안 되는 지는 묻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천장에 걸려 늘어져 있는 공중식물에 물을 줬었다. 분무기로 가득 뿌리다 보면 바닥에 물방울이 맺혔고 가끔 그가 그 물을 그대로 놔둬 미끄러지기도 했다. 꼬리뼈가 찡하게 울리면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온 나나 그가 서로를 일으켜주었다. 아주 해가 쨍한 날에는 작은 무지개가 잠깐 생겼는데 그걸 보겠다고 계속해서 분무기의 손잡이를 눌렀다. 물이 다 떨어져 텅 비고 그 물이 발 앞에 흥건하게 고일 때까지.

몇 년 전이었다.

 

*

 

사람들이 왔다 간다. 12첩 반상을 올리듯이 왔던 사람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꽃의 이름을 묻는다. 그저 꽃을 받을 사람만 생각하며 신중하게 한 송이 한 송이를 고르는. 평온한 얼굴로 입에서 말과 눈물을 섞어 내보내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무덤에 꽃을 바치려고 온 이들은 곧 다시 생으로 돌아간다. 다자이는 그 모두에게 평등한 꽃을 쥐여준다. 색이, 향이, 모양이 달라도 꽃에 베인 것들은 모두 같다. 그가 죽고 카펫을 쓸던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엮어 만들었으니.

다자이는 오래 꽃집을 했다. 수선화, 장미, 안개꽃, 튤립, 백합 그리고 프리지어, 국화, 선인장, 호야. 가게 앞에 개양귀비 화분을 놓아 키웠고 봄에는 작은 커피나무를 큰 화분에 옮겼다. 문밖에 꼬리가 긴 풍경을 달았다. 가게는 작은 골목에 있어 날씨가 나쁘지 않을 때는 문을 항상 열어둔다. 풍경 소리가 사람 없는 골목에 차랑했다.

 

*

 

다자이는 종종 예고 없이 가게 문을 닫는다.

그런 날이면 항상 동틀 무렵에 일어난다.

 

*

 

커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빛이 반쯤 통과된 옅은 그림자가 베란다를 비춰 들어온다. 빈 화분들이 몇 개 쌓여 있는 너머로 해가 뜨고 있다. 화분 그림자가 서 있는 사람 같다. 바닥에 끝자락이 닿는 긴 커튼이 유리를 가리고 있다. 다자이는 부은 눈을 깜빡이며 몸을 일으킨다. 얇은 머리카락이 이마를 스치다 몇 가닥을 얼굴에 남겨놓는다.

정말 그대로 있는 것처럼. 모양을 잊은 지 오래된 물상들이 마치 다시 돌아온 것처럼 부옇게 있다. 흐린 시야를, 그 빛무리를 또렷이 보려 시선을 고정한다. 손으로 눈을 비비는 것도 금세 사라질까 하지 못한다.

다자이는 무릎으로 기어갔다. 손을 주저하며 내밀고 헛것을 보는 사람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도통 이유를 알 수 없는 생각이 든다. 커튼을 잡아야 한다. 다른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처럼. 잠이 달아났다.

흰 벽뿐이었다.

화분의 그림자는 직선이었다. 해는 이미 화분 너머로 떠올랐다. 눈이 아프도록 밝은 아침 햇빛은 창의 플라스틱 둘레에 나누어져 들어와 접혀 벽에 걸쳐진다. 아주 조금씩 밑으로 내려온다.

새벽 내를 같은 자세로 있던 어깨가 움직인다. 다자이는 오른쪽으로 누워 먼지의 수를 센다. 뼈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리를 잘못 잡고 태어나 평생 삐걱거리는 몸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 흰 뼈가 피부 안에서 단단히 어긋나있다.

 

*

 

나는 들숨만 마시는 짐승이 될 터였다. 커다란 물을 다 마시고 죽어버리는 짐승이. 긴 목을 가누지 못해 떨어지는 머리로 부서진 뿔을 생각하는 갈색 짐승. 눈앞에 매끈한 뿔이 처참하게 부러져있다. 그러니 나는 나태해져야 했다. 꺾인 식물의 풋향기가 떠도는 이 공간에서 나는 누구보다 나태해져 꽃을 잇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야 했다. 흙과 자갈 위에 몸을 누이고 머리를 뚫고 자라난 단단한 살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음을 생각하며.

해가 떠 있는데 천장 아래에서 눈이 내린다. 다자이는 몸을 웅크린다. 떨어지는 눈은 살을 파 헤집는다. 오래 불어온 바람이 눈이 헤집은 자리를 건드려 쓰라리지만 참지 못할 만큼 아프진 않다고 생각하며 다자이는 그대로 가만히 있다.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이런 이상(異常)은 두껍게 옷을 입어도 몸이 떨리고 막아 피할 수 없는 추위가 살을 엔다.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눈보라가 그치길 기다리는 것. 얼어서 싸늘하게 식어갈 시간도 없이 숨이 막힐 거라 다자이는 생각했다.

손끝이 시리다. 겨울이 오려면 이 길고 흰 가을을 지나야 한다.

 

*

 

입술을 꾹 다물고 커튼을 잡는다. 두 손 안에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입술 안쪽을 물었다. 입 안쪽의 살이 이를 미끄러뜨린다. 손에 힘을 주어 쥐고 한 번에 당긴다. 천은 위에서 지탱해주던 텅 빈 알루미늄 막대와 함께 분리되다 말고 떨어진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커튼에 막힌다. 걷어낸 커튼은 알루미늄 막대에 꿰어진 채로 거실 한구석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다. 움직임도 없고 소리도 없는 구깃구깃한 주름과 같이.

다자이는 목놓아 운다. 커튼만 마치 이곳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깨끗해서, 여전히 종이같이 얇은 소리가 나서. 그렇게 많은 피가 하나의 점도 남기지 않아서. 양쪽을 당기면 길게 찢어질 것만 같은데.

숨이 급하게 덜컹거리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갓 태어난 새 같이 등이 떨리고 제 호흡도 제대로 가다듬을 수 없다.

다자이는 왜 오다 사쿠가 커튼을 바꾸지 않으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

 

카펫에는 단단한 갈색 반점이 많이 생겼다.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린다. 어깨에는 눅진한 슬픔의 흔적이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다.

다자이는 카펫을 만져본다. 오래 잠들지 못한 손등이 창백하다. 손톱 끝이 지나간 곳마다 라일락이 핀다. 파랗게 질린 보라색 꽃물이 짙게 남는다. 라일락은 직립보행을 하려는 듯 허리를 펴고 자기들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의 모습을 쳐다본다. 바람이 불지 않아 미동도 없이 꽃잎을 피우고 핏기없는 얼굴로. 다자이는 계속 그림을 그린다. 커다란 라일락밭 한가운데서.

 

*

 

처음 같은 집에 들어갔을 땐 그 전 사람들이 남긴 냄새가 구석구석 배여 있었다. 섬유유연제를 잊은 뻣뻣한 빨래 냄새, 향수, 이불, 베개에 남았던 사람의 체향이 새로 도배한 벽에 묻혀 흐려져 있다. 다자이는 공기를 떠도는 떠난 사람의 감정을 흐릿하게 느꼈다.

오다사쿠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빗자루로 나무 바닥을 쓸어냈다. 매끈한 바닥 위로 드문드문 있는 종잇조각과 먼지 덩어리를 모아 버린다. 다자이는 걸레를 빨아와 문과 창틀을 닦는다.

냉장고를 옮기고 책장을 한쪽 벽에 붙였다. 옷장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고 콘센트 위치를 확인했다. 몇 안 되는 가구를 다 배치하고 다자이는 자잘한 물건 정리를 시작한다. 박스에서 꺼낸 책 묶음은 오다사쿠의 것이고 제 겨울옷은 옷걸이 채로 비닐에 쌓여있다. 다자이는 나란히 겹쳐져 있는 옷걸이의 고리를 잡아 옷장 안 행거에 한꺼번에 걸으려다 포기했다. 미끄러진 옷들은 걸린 옷보다 많았다. 오다 사쿠는 책을 꽂다 말고 다가와 떨어진 옷가지들을 주워 하나씩 건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 같네.’

다자이는 짧게 웃었다.

‘그런가? 그럼 자네가 다 하는 게 좋은 것 같은데.’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놓고 다자이는 팔을 톡톡 두드리며 가벼운 걸음으로 책장으로 갔다. 놀리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하며 오다사쿠는 다자이에게 말한다.

‘책으로 자살시도는 하지 말게.’

오다 사쿠는 다자이가 아이 같다는 말에 웃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얼추 짐을 다 정리했을 즈음엔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동쪽은 어두컴컴한 남색이고 서쪽은 해가 진지 얼마 되지 않아 보라색이었다. 현관문을 연 오다 사쿠가 다자이에게 무얼 하냐고 묻는다. 다자이는 아무것도 아니네 하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

 

다자이는 아주 이른 아침을 가끔 먹는다.

식탁에 앉아서 숟가락을 느리게 뜬다. 선명하지 않은 노란색, 이국의 향신료가 코를 찌른다. 강황, 계피, 후추와 마늘, 생강. 가게 내부와 나무 탁자의 무늬,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의 태연한 모습이 희미하게 생각난다. 처음 그 카레를 먹었을 땐 물을 들이켜며 호들갑을 떨었었고 끝내 다 먹지 못해 밥알을 씹으며 향에 익숙해질 수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마 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지만.

 

오후 날씨가 맑지 않을 거라고 했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파랗다.

장미 이파리와 잘린 가시가 탁자에 수북이 쌓여 말라간다. 그 진초록 더미 옆에는 풍성한 작약이 있다. 흰 꽃잎이지만 보라색을 희미하게 띠고 있는 것과 붉은 분홍색 꽃을 화려하게 흐트러뜨린 꽃이 두 팔로 안아야 할 만큼 가득 있었다. 다자이는 작약 꽃다발을 만들어 갈 곳이 있었다.

 

차랑. 문에 달린 closed 팻말이 흔들린다.

손에 가득 들고 있던 작약이 후드득 떨어졌다. 식탁 위에 흩어지고 개중 몇 개는 바닥에 떨어졌다. 도자기 화분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화분을 건드리고 한 박자 느리게 탁자를 짚은 손이 다시 갈 곳 없이 공중에서 주먹을 쥐려다 만다. 오다 사쿠노스케, 다자이는 가만히 그 이름을 불렀다. 얇은 눈꺼풀이 느리게 깜빡거린다. 바깥은 벌써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바닥에 화분의 파편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다. 쏟아진 흙에서 오래된 여름 냄새가 올라온다. 말라버린 거친 풀과 자갈의 건조한 향. 다자이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뒤로 주춤 물러나려다 도로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오른발이 한 발자국 나갈 때 수국은 물과 함께 느리게 쏟아졌다. 다자이는 오다 사쿠를 향해 방금 넘어진 플라스틱 통처럼 휘청이다 달려간다. 눈이 아프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발을 헛디뎠다 다시 중심을 잡고 그 짧은 거리를, 몇 발 안 되는 공간을 넘는다. 수국이 한 송이, 한 송이 따로 떨어진다.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 동그란 꽃의 모습은 바닥에 눌려 찌그러져 다시 온전치 않다.

그가 무엇이든지는 상관없었다. 허상이고 신기루래도 붙잡았을 터였다.

오다 사쿠의 모습에 후드득 흩어지는 핏방울이 겹쳐 보였다. 다자이의 발에 물이 찰박이며 튀었다. 셋만에 오다 사쿠의 옷깃을 붙잡고, 무너지는 두 무릎을 바닥에 댄다. 차가운 물이 섬유를 타고 올라온다. 다자이는 어린아이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의 냄새가 훅 끼쳐온다. 아래로 길게 잡힌 코트 주름이 기쁘고 서글프다.

“오랜만이야.”

오다 사쿠는 한 쪽 무릎을 꿇는다. 차가운 물에 무릎이 닿는다. 시선의 높이가 같아졌을 때 그는 다자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고개를 든 다자이의 얼굴에 미안함과 기쁨과 당황스러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오다 사쿠는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묻어 머리칼을 흐트려뜨리고 다자이의 일그러진 얼굴에 눈을 맞춘다. 다자이는 그의 옷을 놓고 얼굴에 손가락을 댄다. 볼과 턱을 감싸고 고개를 숙인다.

“오다 사쿠, 나, 그 커튼을, 버렸어.”

“괜찮아.”

“오다 사쿠, 나는,”

얼마나 오래 부러진 뿔로 살았니. 수명을 연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원래 뿔이 없던 생물을 연기하며 오래 잠을 자려 했을지도 몰라. 겨울이 오지 않는 곳에서 눈을 맞으며 겨울잠 자기를 꿈꾸었겠지. 다자이, 겨울이 오지 않아도 겨울잠을 잘 수 있다는 걸 이젠 알 수 있을 거야. 잘 자렴.

오다 사쿠는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말들을 생각했다. 다자이는 울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웅덩이에 제 체온을 뚝뚝 떨어뜨리며.

 

*

 

문밖에는 물상추가 푹신한 잎으로 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파란 비닐 봉투를 가져와 잘린 잎을 쓸어 담자 원래 탁자 위에 있었던 책이 보인다. 다자이는 책을 집어 든다.

읽다 보면 오다 사쿠가 넣어둔 세 잎짜리 토끼풀이 바짝 말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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